소경 바디매오의 외침 – 그것은 나의 소리

소경 바디매오의 외침그것은 나의 소리

(마가복음10:46 – 52) 

                                                                              5/12/98    이  지영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외쳤다.  여리고 성에서 나오시는 예수를 큰 따르던 무리들과 제자들도 다 들리게 크게 외쳤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몇번이나 소리 질렀을까. 예수가 다음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다니던 무리들에게 이 소리는 귀찮고 하찮은 요청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치고 잠잠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에게 달라고 할 수 있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 그의 긍휼, 자비를 외치고 있는데 이 소리는 무시를 당해야 했다.  길가에서 구걸하는 장애자 소경의 소리였기 때문 뿐이었을까.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수많은 소리 중 주님을 멈추시게 했던 소리, 그것이 바로 주님이 듣기를 원하셨던 소리가 아니였을까.

이적에만 관심이 있던 관중들, 3년이나 숙식을 같이 하던 제자들도 이 외침의 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 소리의 참 간구하는 몸부림치는 기도소리를 듣지 못했다.   2000년 동안 어린아이로부터 노인까지 모두 좋아하는 이 얘기는 그냥 소경이 눈을 뜬 좋은 얘기로 끝나서는 안된다.  온 세상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려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와 자기 자신을 연결시키려는 한 개인의 소리지만, 오히려 온 세상의 사람을 대표해서 갈망하는 절규였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 누구도 이 소리의 소원이 예수님이 정말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임을 몰랐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소경은 잠잠하기는커녕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무리의 방해와 질시를 뿌리치고 질러대는 소리 – ‘Have mercy on me.’ –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지워지지 않는 이 한 소리가 내 마음 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진정 이 한 반복되는 소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군중을 뚫고 예수님께 닿기를 원했던 소리, 기도, 메아리치는 간구, 다 쏟아놓은 마음 – 그것은 나의 마음의 소리, 내가 동참해서 내고 싶은 소리, 이제 나의 영원한 기도가 되어 버렸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실 분은 예수,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지나가실 때 나를 보셨겠지만, 나는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그냥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당신의 그 인류를 향한 계획 안에 내가 있는지,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나는 미약해서 당신의 나라에 낄 자격이 없어도

    당신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만하면 됩니다.

    다윗 왕의 자손 예수여, 왕이신 당신 – 나는 거기에 굴복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는 당신의 긍휼을 꼭 받아야 할 불쌍한 존재입니다.

땅바닥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 높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야 했다.  예수님이 들으시라고.  그의 소원을 이미 아시는 예수님은 그가 소리를 높이기 전에 벌써 들으셨을 것이다.  오히려 주님은 그로 하여금 우리 모두의 진정한 필요는 바로 이것이라고 모두가 다 들을 수 있게 외치게 하신 것이 아닐까.  소경의 입을 통해, 눈은 떳어도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나, 우리 모두의 필요를 큰 소리로 간구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머물러 서셨고 ‘저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소경까지 포함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분인데, 그 구원의 바탕은 긍휼이라고 주님은 멈추셨고, 한 개인의 영혼을 치유하기 원하셨다.  긍휼을 베풀기는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긍휼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만난 것이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았구나.  내가 베풀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너는 알았구나. 

    너에게 필요한 참 구원이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구나.

    그 무엇보다도 무엇이 필요한지 –  너는 내가 너의 필요인지를 아는구나.

    믿음, 이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믿음이 네게 있구나.’

그가 나를 오라신다고? 소경은 자기의 전 재산인 겉옷을 내팽개치고 뛰었다. 그가 나를 불렀다. 무조건 뛰어 나아가면 예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의 행동이었다.  소경은 다리로 뛰고 마음으로 뛰었다.  벌써 그의 눈이 뜨인 것처럼…그는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내가 뛰어 나가는 앞에 예수는 나와 만나주시리라. 그는 나의 소리를 들으셨다.

    그가 나를 불쌍히 여기기로 하셨구나.  그가 나를 긍휼히 여기기를 원하신다.

    예수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의 자비를 얻을 자, 미천한 자 – 어찌 나를 부르시나이까.

    당신은 다윗의 자손 왕이신 분, 내가 가까이 갈 수 없지만,

        당신의 긍휼히 여김을 믿고 나옵니다.

    나를 만나주시겠다고요.  고맙습니다.  당신은 저의 소리를 들으셨군요.‘

분명히 예수님은 그를 잡으셨을 것이다. 내가 여기 있다고. 그의 팔을 만지며 그의 얼굴을, 그의 헝크러진 머리를, 허둥대는 다리를, 고정되지 못하는 그의 을 보셨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모습.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나의 모습. 진리를 찾다가 실망이 쌓인 나,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진 나의 모습 – 주님은 불쌍히 보셨다.  소경의 필요를 다 아신 주님은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기를 원한다.  그는 무엇을 보기를 원했을까.  물론 부모와 친구, 주위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다 보는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나.  아니 진실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아픔, 필요, 진리를 가리려는 세력들로 모두 뿌옇게 흐려진 것 아닌가.  내가 꼭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소경이 처음 떠서 볼 수 있었던 분, 나의 눈이 떠서 보아야 것은 주님, 곧 그의 말씀이다.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나를 잘 볼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나는 정말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를 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보면 다른 것도 다 보일 것입니다.  나는 보고 싶습니다.  나는 보아야 합니다.’ ‘예수여, 나를 도와 주소서.’   주님 다 아셔도 이 소원에 응답하시기 위해 나로 외치게 하신다.  나의 이웃도 다 들을 수 있도록. ‘당신만이 나를 그렇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신 건 나의 믿음 –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소경이 믿음으로 눈이 뜨인 것처럼, 나 또한 주의 긍휼히 여기심을 믿는 믿음으로 마음의 눈은 떠지고 아픈 부분은 나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분을 바라다 있을 것이다.  – 분이 새로이 주신 눈으로.

소경 바디매오가 고맙다.  그가 절실한 간구함으로 우리를 섬겨준 것이다.  그의 미약한 존재를 개의치 않고 힘차게 소리쳐줌으로, 나도 주께로 뛰쳐 나아가야함을, 주에게서 새로운 안목, 영의 눈을 받아야함을 알려주었으니까. 

‘소경이 되어 수지맞았다’던 안요한 목사님의 소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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